한국 연금 시스템에서 제외되는 해외 거주 국민의 대안은? 국적과 권리의 경계에서
‘국적은 한국, 삶은 해외’인 사람들은 연금에서 어떤 취급을 받을까?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 국민의 수는 이미 750만 명을 넘어섰다. 유학, 취업, 결혼, 이민 등 다양한 이유로 국경을 넘어선 이들은 여전히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지만, 한국 연금 시스템에서는 실질적으로 배제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국내에 거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민연금 가입이나 수급이 제한되며, 연금 제도는 ‘국내 거주자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특히 국민연금을 일부 기간 납부했지만 중도에 해외로 이주한 경우, 그동안 납부한 금액조차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거나, 연금 수급 자격이 사라지는 문제도 발생한다. 해외 거주 국민은 국적은 유지하고 있지만, 제도의 테두리 밖으로 밀려나 있는 셈이다. 이 글에서는 한국 연금 시스템이 왜 해외 거주 국민을 배제하게 되는지, 현재 해외 교포나 장기 체류자의 연금 수급 현실은 어떤지, 그리고 제도적으로 어떤 대안이 가능한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왜 한국 연금 시스템은 해외 거주 국민을 포괄하지 못하는가?
한국 연금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국내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고, 경제활동을 하는 자를 대상으로 설계되었다. 즉, 국내에 주소지를 두고 정기적인 소득이 발생하는 개인이 연금의 가입자 및 수급자가 되는 구조다. 따라서 해외 이주나 장기 체류로 인해 주민등록이 말소되거나 국내 거소 신고만 있는 경우, 자동적으로 국민연금 대상자에서 제외되는 구조다.
더불어 국민연금은 강제 가입 제도이기 때문에, 일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임의가입자로도 편입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해외에서 근무 중인 경우 외국 연금에 가입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고, 한국과 해당 국가 간의 사회보장 협정이 체결되지 않았다면 이중 납부를 피하기 위해 아예 한국 연금 가입이 차단된다.
문제는 이로 인해 국적은 한국이지만 제도에서 소외되는 국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유학이나 취업으로 몇 년간 해외에 나가 있는 동안 국민연금 납부가 중단되면, 나중에 귀국하더라도 가입 기간이 부족해 수급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 연금 시스템은 이런 이력 단절을 자연스럽게 연계하거나 보완할 수 있는 기능이 부재한 상황이다.
해외 거주 국민의 연금 수급 현실과 제도의 한계
해외 거주 국민 중 일부는 국민연금을 납부한 이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금을 수령하지 못하거나 전액 환급을 받아야만 하는 현실에 놓여 있다. 특히 국민연금 납부 기간이 10년 미만인 경우, 수급권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본인의 신청에 따라 일시금으로 '반환일시금'을 수령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반환일시금에는 이자가 거의 붙지 않으며, 사실상 납부한 보험료를 ‘그대로 돌려받는 것’에 불과하다.
또한 일부 국가는 한국과 사회보장협정(Social Security Agreement) 을 맺어 상호 연금 가입 기간을 인정해주지만, 이런 협정이 체결된 국가는 매우 제한적이다. 예컨대 미국, 독일, 캐나다, 호주 등 일부 선진국과는 협정이 있지만, 아시아 및 중동, 남미 등 다수 국가와는 아직 협정이 없다. 이로 인해 동남아 지역 취업자나 결혼 이민자의 경우, 한국 연금과 아무런 연계가 되지 않아 불이익을 받게 된다.
게다가, 해외 거주 중인 국민이 국민연금공단과의 행정적 소통을 원활히 하기 어렵다는 점도 사각지대를 확대시키는 요인이다. 주소 변경, 납부 내역 확인, 수급 신청 등의 절차가 복잡하고 해외에서 접근이 어렵기 때문에, 귀국 후 뒤늦게 불이익을 인지하는 경우도 많다. 한국 연금 시스템이 전자 행정이나 다국어 서비스 체계에서 여전히 미비하다는 점은 제도의 국제 포용성에 큰 약점으로 작용한다.
한국 연금 시스템에서 배제된 해외 국민들이 겪는 실제 피해
해외 거주 국민들이 한국 연금 시스템에서 제외됨으로써 발생하는 피해는 단순한 ‘제도적 불편’이 아니라 삶의 안정성과 직결된 실질적 손해다. 우선, 장기 체류자나 교포 중에는 한국에서 일정 기간 근무한 뒤 이주한 이들이 많다.
이들은 국민연금을 수년간 납부했지만, 수급 기준인 10년을 채우지 못해 연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해외로 이주한 국민 중에는 9년 이상을 납부했지만, 단 1~2년 부족으로 노령연금 수급 자격을 상실하는 사례도 존재한다.
또한 반환일시금으로 받는 금액은 연금으로 수령했을 때보다 훨씬 적은 혜택에 그치며, 이자도 거의 없는 상태로 환급된다. 일부 이민자들은 모국에 대한 기대를 갖고 국민연금을 유지했지만, 결과적으로 ‘버린 돈’이 되었다는 심리적 박탈감을 호소한다.
해외 취업자 중에서는 이중국적 혹은 영주권자가 된 후 한국으로 귀국했을 때 국민연금에 다시 가입하려 해도 과거 납부 이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연금제도가 ‘시민권’ 또는 ‘주소지’ 중심으로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국적을 유지한 교포조차 제도 밖으로 밀려나는 이중 배제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해외 거주 국민을 포괄하기 위한 연금 시스템 개편 방향
한국 연금 시스템이 진정으로 ‘모든 국민의 노후를 보장하는 제도’가 되기 위해서는 국외 거주자에 대한 제도적 접근성 확보가 필수적이다. 첫째, 국적 기반 연금 가입 허용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국내 거주 여부와 무관하게, 일정한 조건(소득 신고, 세금 납부 등)을 충족하는 국외 거주자도 국민연금에 임의가입자로 편입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춰야 한다.
둘째, 사회보장협정의 체결 국가를 다양한 지역으로 확대해야 한다. 단순히 경제 규모가 큰 국가뿐 아니라, 실제로 한국인이 많이 진출해 있는 국가 중심으로 협정을 확대하면 납부 이력 연계가 가능해지고 수급 자격도 확장된다.
셋째, 국외 체류자에 특화된 연금 전자 행정 시스템과 모바일 기반 관리 서비스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가입 이력, 납부 내역, 예상 수령액, 수급 신청 등 전 과정을 언제 어디서든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하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 특히 다국어(영어, 중국어, 베트남어 등) 서비스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마지막으로, 과거 납부 이력이 있는 국외 거주 국민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이후 자동으로 ‘부분 수급’ 권리가 발생할 수 있도록, 최소 수급 기간을 유연화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이는 모국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연금 제도의 글로벌화에도 기여하는 길이 될 것이다.